기산 박 헌 봉 

기산 박헌봉선생(1906 ~ 1977)은 일제강점기인 1930 ~ 40년대에 일제가 조선음악협회에 양악부와 방학부(일본음악)만을 조직한 것에 맞서, 조선악부를 만들어 상무이사로서 이동백. 박녹주 등 판소리 명창과 박춘재.김봉업 등 산대희 놀이 명인들 60~70명을 꾸려 평안도와 전라도 등에서 공연을 하여 체포, 구금을 당하는 등 민족음악을 지키기 위해 온몸을 던졌다. 
 
 해방 후에는  문화재위원으로서 인간문화재 제도(현재의 무형문화재)를 창안하고 국악예술학교를 창립하였으며 최초로 국악관현악단(현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을 만들었다. 현재의 국립국악원의 전신인 대한국악원장을 세 차례 연임하였고, 1945년부터 1960년까지 함경도,평안도를 비롯하여 전라도, 경상도를 돌면서 민요, 판소리, 잡가, 남사당놀이 등을 릴테이프에 채록하여 자료의 일부를 국가에 기부,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1960년에는 ‘국악예술학교’를 창설하여 한국음악을 전공하는 예술인들을 교육하는 데 앞장섰을뿐더러, 한국전통음악예술단 30 ~ 50명을 이끌고 독일, 일본, 미국 등 세계를 돌면서 부채춤과 농악 등을 선보여 오늘날 한류의 기반을 다졌다. 양평에 기산박물관이 세워진 계기는 함경도부터 강원도와 경기도를 거쳐 전라경상도를 돌면서 한국민속음악을 채집하던 중 두물머리 근처에서 머물며 경기민요 등을 채록했다는 증언과 기록에 근거한다. 
 
 1968년에는 한국 최초의 창악이론서인  창악대강(唱樂大綱) 출판으로 서울시문화상과 한국일보 출판문화대상을 받았다. 1970년대에는 한국음악을 집대성한  국악대관(國樂大觀) 을 집필하던 중 병환으로 1977년에 별세하였다. 정부는 기산의 공적을 기려 1974년에 새롭게 제정된 금관 문화훈장 제2호(1975)를 수여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유명인의 개인 음악박물관으로 통영의 윤이상 음악박물관과 쌍벽을 이루는 기산음악박물관이 2024년 1종 전문박물관으로 새로 생긴다. 중요한 일화를 하나 소개한다면,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은 1972년 뮌헨올림픽 개막식에서 자신이 창작한 오페라 < 심청전 >을 올림으로써 세계적 명성을 얻었는데, 그 < 심청전 > 창작의 원동력이 되는 판소리 < 심청가 > 대본을 고향 산청의 대선배(11살 차이)인 기산 박헌봉선생에게 서신으로 요청, 받아서 여러 차례 들으면서 영감을 얻었다고 회고했다. 
 
하이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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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과 손자  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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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 박헌봉

 


기산 선생의 제자들로는 국악계의 박범훈 전 중앙대 총장, 김덕수 사물놀이의 김덕수(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와 최종실(중앙대 교수), 김영재(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 박승률(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 최경만(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 이옥천 명창(판소리 '흥부가' 인간문화재), 채향순(중앙대 교수), 이종대(부산대 교수), 송선원(지휘자, 남부대 교수), 정회천(전북대 교수) 등 40 ~ 50여 명의 교수들이 있다.
 
 아울러 연예인으로 김세레나, 바니걸스, 「서편제」의 오정해, 「대장금」의 견미리, 이재은, 2019년 < 단, 하나의 사랑 >으로 KBS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상을 받은 탤런트 신혜선, 이인성, 영화 「동주」의 강하늘, 히트곡 < 보고싶은 얼굴 >.< 사랑은 이제 그만 >의 가수 민해경, 히트곡 < 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 >.< 사랑은 차가운 유혹 >의 양수경, 이영화, 유지나, 빅뱅의 G 드래곤 등의 막강한 연예인들이 있어 대중문화예술계의 폭과 깊이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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